note (24.04.26.)                                
강지웅
                              
한동안 애써 찾았던 공간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죽어있는 구조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폐허였다. 폐허 아닌 다른 것으로는 한 번도 존재했던 적 없는 폐허였다. 한때 여러분의 낙원이었던 그곳은 어떤 아카이브에서조차 박탈되어 심지어는 뒷담화의 소재로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듯,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거기에 있다. 사십여 년 전 만들어졌을 매트리스 위에서의 멈춘 시간을 기억한다. 죽어진 공간 속에서 잊힌 것들을 바라보면서. 멀리서 이따금씩 들려오는 비극적 잔상의 소리를 곱씹으면서. 지나간 어느 날과 한치의 오차도 없었을 날이었다. ‘여전함’이 주는 무상감을 뒤로하고 근처를 맴도는 공허한 신체는 사막색 수면 위에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가? 누군가 그러모은 사진 더미는 어떤 물결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무용한 생각에 빠진 채 주머니 속에 찌그러진 캬라멜 껍질을 만지작 거린다…

보고 또 봐도 사진은 어딘가 천진한 구석이 있다. 지나치게 보송하고, 자기폐쇄적으로 산뜻하다. 태생부터 과거가 되었을 얼굴을 하고서도 끊임없이 팽팽한 현재를 부르짖는다. 퍼머넌트, 아카이벌 따위의 수식어가 자아내는 영원의 환상처럼, 지나간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할 현재처럼 무한히 자욱한 디지털 구름 속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내가 찍은 납작한 사진도 같은 운명을 맞는 듯 보였다. 살결처럼 고운 종이 위에 출력한 사진 속 풍경은 그야말로 무결하다. 좋은 기름을 머금고 볕을 받아 아름답게 태닝된(tanned) 가죽처럼 때로는 우아하고 일면 신비롭게 느껴진다. 두께라든지 부피라든지하는 거추장스런 것들이 매끈하게 거세된 채 영구적으로 안락하리라는 믿음은 가히 신화의 그것과 같이 느껴진다. 종이 위의, 무릇 있어야 할 위치에 사뿐히 내려앉은 잉크입자들이 만들어낸 상(像)은 내 몸보다 영속할것인가? 실제로 모든 것은 썩지 않고 영속하고 있는가? 영원히 지속한다는 환상은 비단 클라우드 속 이미지들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일종의 쟁취되지 못한 로망이다. 거대한 무덤 속 봉인된 미이라들이 끝내 맞이하지 못한 고상한 풍경처럼 거머쥐어지지 못한 빛바랜 낭만이다. 

Even hope decays... 희망조차도 부식한다.*

희망조차도 부식하다니. 최후의 날 이후 유유히 떨어지는 잿가루조차 그것이 희망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말해주지는 않을 테다. 모든 것은 무섭게 날아드는 시간이라는 물살을 부딪히면서 부식한다. 여느 희망이 그러하듯이.

밀물과 썰물이 있는 바다. 부단히 움직여서 모든 것을 휩쓸리게 하는 바다 위에서 파도와 햇빛을 맞고, 작은 벌레들이 기어다니거나 잠시 내려앉았다 가는 시간 동안 어떤 가루가 자욱이 쌓인 사진 사진은 한동안 바득바득 그러모았던 정보를 모두 물결에 소진해버린 듯 축 늘어져 있다. 어딘가 비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독산동의 구 기숙사 건물 안의 공간 내부에—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이—그렇게 있다.

더 이상 어떤 역사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지 않은, 뒤집혀 전사(轉寫)된 사진은 침묵 속에서(마침내) 어떤 시간을 되감아낸다. 수억년 전부터 유기물이나 무기물로 일정기간 존재했을 작은 입자들은 잠시간 사진 위에 올라앉았다가, 달라붙었다가, 지금은 독산동의 한 전시공간 안을 매캐하게 점령했다. 축축했던 껍데기들은 어느새 바삭하게 말라 공간 안에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이 자리에 있다. 열린 창문 사이로 날아드는 바람이 입자를 서서히 떨구어 낼 때, 떨어지는 입자는 이 순간을 위해 오랜시간 기다려왔다는 듯 순간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것들은 또 다시 이리저리 떠돌다 해변으로 밀려나온 넝마처럼 구석진 장소 어딘가에 널브러져 이 공간을 영원히 부유할 것이다.

몇몇 지난 작업물에서—드러내기보다는 숨김의 결과—무너지거나 부서진 공간이 구조적으로 찍힌 먼지 쌓인 필름 스캔본은 깨끗하게 닦였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막론한 먼지와의, 습기와의 싸움 끝에. 스마트폰과 카메라와 필름을 필사적으로 보호하느라 온 몸이 갯벌에 파묻혀 흙빛으로 물드는 동안 비로소 거머쥔 승리의 트로피다. 아아, 승리했다… 그런데 뭐하세요? 당신은 당신이 하는 일을 믿으세요? 당신이 저당잡힌 믿음을 위해 복무하고 계신가요? 전에 어디선가 적었듯 ‘무심하고도 철저하게’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히 반복되는 인류의 비극처럼, 알면서도 되풀이하는 실수이자 어딘가 세상을 좀먹는 일에 불과한 듯하다. 이것으로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구원하거나 구원받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부질없는 문제에 관한 골몰을 기꺼이 지속하는 이유에 관한 고민을 지속한다. 모든 것이 희망처럼 부식해 사라져버릴 때까지!

*DC 코믹스의 히어로물 왓치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닥터 맨해튼(Dr. Manhattan)’의 대사. 모든 시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초능력자인 닥터 맨해튼은 누군가가 처할 근미래의 비극적 운명을 예언하면서 그가 붙잡고 있던 희망을 저버린다. 근미래니 예견이니 하는 말조차 전지적인 존재인 그에게는 그다지 의미가 없는 표현이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이고, 이는 인류의 역사에서 수없이 되풀이 되어 온 찰나의 비극에 불과하다. 원망하듯 따져묻는 그에게 닥터 맨해튼은, 단순히 ‘희망조차도 부식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고 건조하게 답한다.